중고서점에 들러 우연히 발견 후 제목이 꽂혀서 산 책. 내용이 주로 주제에 대한 짤막한 소제목들과 상념들로 이루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해 짧은 줄거리와 리뷰를 해보려 합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영상을 빨리 감기 해서 보는 이유, 설명이 너무 많아진 콘텐츠들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시작으로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Z세대의 사고방식과 삶에 연관시켜 설명합니다.
줄거리
1. 영상을 빨리감기 해서 보는 이유와 그에 대한 비판
저자는 영상을 빨리감기 해서 보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구독서비스의 증가이고, 두 번째는 감상이 아닌 '소비'의 목적으로서 영화를 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영화 한 편을 볼 때마다 비싼 돈을 지불하고 영화관에 가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몇천 원으로 무한한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습니다. 봐야 할 콘텐츠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빨리 감기를 하게 되고, 내용을 조금 건너뛰어도 딱히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다시 보면 되니깐요.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면서 '정보'를 얻기 위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주위사람들의 대화에 끼고 시류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죠.
저자는 이런 현상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합니다. 건너뛴 10초에 있는 정적, 풍경 등이 모두 영화의 일부이며 작가가 전달하고자하는 의도를 드러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제하고선 총체적인 감상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찬가지로 속독 및 초역과 빨리 감기는 엄연히 다르다고 얘기하며, 패스트무비의 위법성과 품질에 대해 비판합니다.
2. 설명이 많아진 컨텐츠들
요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는 표정과 장면으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는 부분에도 모두 일일이 설명을 달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객이 이해를 하지 못하고, 불친절하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지요. 저자는 이런 현상을 유치한 관객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SNS와 인터넷의 발달로 이전에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유치한 관객이 세상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다수가 유치함을 작품 탓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독자 수준이 이렇다 보니 그러한 피드백의 결과로 친절한, 설명이 난무하는 영화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유튜브도 한몫합니다. 모든 영상이 짧고 빠르고 구체적이니 이에 익숙해진 대중들은 설명 없는 영상을 이해하기 어려워합니다.
3. Z세대는 실패하고 싶지 않아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지나치게 살폈기 때문에 Z세대들은 실패하거나 혼나는 일에 놀라울 정도로 내성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실패하지 않으려고 하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당하게 의견을 말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꽤나 똑똑하다 불리는 명문대 출신 친구들도 예외가 없다고 합니다. 비난과 공격을 당할까 봐 영화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분석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판은 건전한 토론과 비평보다 찬양과 무조건적인 비난만 오고 가게 됩니다. 영화의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기도 하겠지요. 그 어느 때보다 평론서의 판매가 저조한 때가 지금이라고 합니다. Z세대들은 비평가들을 무시합니다.
4. 영화는 단지 스트레스 해소용
사회가 너무 팍팍하다 보니 영화를 통해 뭔가 배우고 싶어 하지도 않고, 깊이 생각하는 것도 꺼려합니다. 그렇다 보니 스트레스가 없는 영화만을 쫓게 됩니다. 주인공이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고 주인공이 위기에 처하는 것을 보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자꾸 스토리나 결말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가려 하고, 그렇지 않게 되면 작가에게 비난과 폭언을 퍼붓습니다. 불쾌함을 견디지 못하다 보니 결국 영화는 사람들이 원하는 주인공이 압도적으로 강하고, 너무 적은 스트레스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는 스토리라인을 강제당하게 됩니다.
리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빨리 감기를 비롯한 Z세대의 여러 콘텐츠 소비 경향을 낳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저자는 이런 소비결과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건너뛰게 되면 작품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설명이 많아지면 작품의 수준이 낮아진다고 믿고 있지요. 일견 일리가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요즘 세대들은 너무 친절한 설명과 스피드하고 간결한 요약에 익숙해져서 독서는커녕 진득하니 앉아서 2-3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도 힘들어하니깐요. 이런 경향성을 Z세대가 자라온 환경과 연관시켰다는 지점 또한 흥미롭습니다.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언급하는데, Z세대들이 자신들의 마음을 지나치게 살피는 부모 아래서 너무 곱게 자라왔다는 것이지요. 바로 직전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엄격하게 훈육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들이 자신들의 자녀에겐 같은 아픔을 주지 말아야겠다는 이유만으로 자녀들의 마음을 지나치게 살핀 나머지 상처에 대해 그 어떤 내성도 기를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잘못을 해도 잘못했다 지적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지금의 Z세대들은 누군가의 공격과 상처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비판을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자는 이런 성향이 콘텐츠 소비에도 반영이 된 게 아닐까라고 얘기합니다.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은 보지 않고, 즐거운 것만 반복적으로 소비하려는 것이 그 예입니다. 뭐 그 외에도 삶이 워낙 팍팍하고 스트레스 투성이이니 여가시간만큼은 기분을 상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하루종일 스트레스받고 와서 여가시간에 또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니깐요.
그런 면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부분과 우려에 크게 공감합니다. 비판과 상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는 때때로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결여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더불어 콘텐츠의 다양화와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이에 다양한 의견을 표출해야 문화가 더 풍요로워지는데, 현대의 콘텐츠 소비 흐름엔 특정 콘텐츠에 대해 무한정 찬양하거나 비난만 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니, 대중들의 니즈에 맞는 작품만 쏟아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한 번 살다 가는 인생. 좋아하는 거 보면서 좋을 대로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스트레스 상황마다 너무 쉽게 무너지는 제 자신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찰나에 이런 책들을 읽으니, 생각이 많아지는 거 같습니다. 너무 좋을대로 살다 보니, 너무 오냐오냐해 주는 사람들만 주변에 두다 보니, 내가 이렇게 나약해진 게 아닐까 싶어서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해서 책을 읽었는데, 어째 결과는 너무 유약한 제모습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는 거 같습니다.
이 책에서 시사하는 바도 사실 제가 깨달은 바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정보'형태로 소비하며, 좋아하는 것들만 반복해서 보고, 필요 없다 느끼는 것은 건너뛰는 등의 '나 좋을 대로 하는' 모든 행태들의 뒤에 가려진 '개성'에 대한 집착, '유행'을 쫓기 위한 발버둥, '타인'과의 비교 등. '본질'은 없고 '껍데기'만 좇게 되는 현상에 대한 비판 말이죠.
빨리 감기를 하는 사람들의 기저에 있는 심리도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너무나 소중한 작품들이 가치를 잃어가는 것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너무 쉽게 얻을 수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요. 만원 이상의 티켓을 주고 극장에서 보는 영화에선 시간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 사람들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지컴.. 이지고.. 이래서 돈과 노력이 수반돼야 뭐든 그만큼의 아웃풋이 따라온다고 얘기하는 거 같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시간가성비를 따지며 요약본을 수십수백 개씩 보는 게 결과적으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데(특히 정보 수집의 목적이라면).. 그럼에도 어쩐지 우리 뇌는 자꾸만 이런 식의 소비가 효율적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감동은 갈수록 줄어가고 뇌리에 박히는 정보도 극히 적어지는데 말이지요.. 왜 인간은 효율을 외치면서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일들을 지속해 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네 여기까지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감상 서평 및 줄거리였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을 읽고 드신 생각들이 있으시면 함께 공유해주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문화생활 > 도서감상혹은비평이라고한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편한편의점 - 2.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 줄거리 및 리뷰 (1) | 2023.06.23 |
---|---|
불편한 편의점 - 1. 산해진미 도시락 편 줄거리 리뷰 (2) | 2023.06.23 |
룰루밀러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줄거리 및 리뷰 (16) | 2023.05.08 |
김영하 여행의 이유 -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0) | 2023.05.06 |
<제로창업> - 무자본 창업, 경험과 지식을 돈으로 바꾸는 노하우 (1) | 2023.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