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는 아무것도 생길 수 없다. 파르메니데스
밀레토스의 세 철학자는 만물을 형성하는 단 하나의 원질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한 물질이 어떻게 갑자기 변해서 완전히 다른 사물이 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를 우리는 '변화의 문제'라 부를 수 있습니다.
기원전 500년경부터 남부 이탈리아에 있는 그리스 식민지 엘레아에는 철학자 몇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엘레아학파'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이 변화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철학자가 파르메니데스입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늘 존재하고 있던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당시 그리스인에게는 널리 퍼져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늘 있어왔다는 점을 당연한 사실로 인정했습니다. 파르메니데스는 무에서는 아무것도 생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은 대부분의 다른 철학자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는 변화가 실제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지금과는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없다는 것이죠.
파르메니데스 역시 자연에서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감각을 통해서 사물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분류해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것을 이성적 설명과 일치시킬 수 없었습니다. 파르메니데스가 감각에 의존해야 할지 아니면 이성에 따라 판단해야 할지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을 때, 그는 이성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내가 직접 본 것만 믿는다"라는 말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는 눈으로 봐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감각은 인간의 이성적 설명과 부합하지 않는, 그릇된 세계상을 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철학자로서 그는 모든 형태의 '감각적 착각'을 밝혀내는 것을 자신의 철학과제로 삼았습니다.
이렇듯 인간 이성에 대한 강한 믿음을 합리주의라고 합니다. 합리주의자란 이성이 세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원천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은 흐른다 :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가 살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소아시아 에페소스에 헤라클레이토스란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의 기본 특성을 지속적인 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헤라클레이토스가 파르메니데스보다 감각을 더 신뢰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흐른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은 운동하며 어떤 것도 영원히 존속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는'것입니다. 두 번째로 내가 강물에 들어갈 때는 이미 강물도 나도 처음과는 달라졌기 때문이죠.
헤라클레이토스는 세계를 지속적인 여러 대립쌍으로 규정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아파보지 않고는 건강의 중요성을 잘 이해할 수 없듯 말이죠. 한 번도 굶주린 적이 없으면 배부름의 기쁨도 모를 것입니다. 전쟁이 없었으면 우리는 평화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며, 겨울이 없다면 봄이 오는 것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선뿐만 아니라 악도 전체 속에서 필수적인 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립 쌍 사이의 지속적인 교류가 없다면 이 세계는 이미 끝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신은 낮과 밤이요, 겨울과 여름이며, 전쟁과 평화, 배부름과 굶주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신'이라는 단어는 물론 신화 속의 신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고자 한 신 또는 신성한 것은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어떤 것입니다. 그에게 신은 바로 내부에서 부단히 변화하고 모순에 가득찬 자연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신'이란 단어 대신 '로고스'라는 그리스어를 자주 썼습니다. 이 말은 이성을 뜻합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이 늘 같은 생각을 하거나 똑같은 이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자연의 모든 현상들을 조종하는 '세계 이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계 이성 또는 세계법칙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며, 모든 인간은 이 세계 이성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대개 자신의 개인적 이성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는 동시대 사람들에 관해 전혀 개의치 않앗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의 견해는 그에게 그저 어린애 장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이 보여주는 모든 변화와 대립에서도 헤라클레이토스는 통일과 전체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만물의 바탕에 놓이는 이 어 떤 것을 '신' 또는 '로고스'라고 불럿습니다.
네 가지 원소 : 엠페도클레스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한 가지 측면에서 서로 정반대였습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성을 토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이토스는 감각적 경ㅎ머으로는 자연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했죠.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두 철학자의 주장이 한편으로 둘 다 옳지만, 다른 한편으로 두 사람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두 학자들이 보여주는 견해 차이는 바로 이들이 단 하나의 원소만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물이 물고기나 나비가 될 순 없습니다. 물은 절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파르메니데스의 견해는 맞습니다. 동시에 엠페도클레스는 감각이 설명해주는 바를 믿어야 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에도 동의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믿어야 하고 지금 우리는 자연의 변화를 목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엠페도클레스는 유일한 원소에 대한 생각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도달했습니다. 물이든 대기든 간에, 오로지 한 원소가 장미 덤불이나 나비로 변할 수는 없으니까요. 자연 역시 단 하나의 '원소'로는 유지될 수 없구요.
엠페도클레스는 자연에 모두 네 가지 원소, 네가지 '뿌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네가지 원소로 흙, 공기, 불, 물을 꼽았습니다.
자연의 모든 변화는 네 가지 원소가 서로 혼합하고 다시 분리하면서 생긴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만물은 단지 서로 다른 비율로 섞인 흙, 공기, 물과 불이나느 것이지요. 꽃이 시들거나 동물이 죽으면 , 이 네 가지 원소는 다시 분됩니다. 우린 맨눈으로도 이런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흙과, 공기, 불과 물은 혼합 과정을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고 순수하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만물'이 변한다는 견해와는 맞지 안습니다.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거니까요. 단지 네 가지의 원소가 서로 혼합하고, 다시 혼합하기 위해 분리되는 일이 일어날 뿐입니다.
이런 과정을 화가가 그림 그리는 것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화가가 한 가지 물감, 예를 들면 빨간색 물감만 가지고 있다면 초록색 나무릴 그릴 수 없겠죠. 하지만 그가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그리고 검정색 물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이 여러 물감을 다양한 비율로 섞어 수백가지 색채를 띤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풀지 못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물질들이 서로 섞여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원리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예를 들어 꽃이라는' 혼합물'을 다시 분해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엠페도클레스는 자연에는 서로 다른 두 힘이 작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 두 힘을 '사랑'과 '갈등'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물을 결합시키는 것은 사랑의 힘이며, 분리시키는 것은 갈등의 힘이라고 보았죠.
우리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은 그가 '물질'과 '힘'을 구분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도 과학 분야에선 원소들과 자연계에 내재하는 힘을 엄격히 구분합니다. 현대 과학에서도 모든 자연의 진행 과정은 여러 원소들과 자연에 존재하는 힘들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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